01. 처음부터 좋지 않은 관계란 없다, 담배만 빼고.
담배를 처음 피기 시작한 건 새내기때였다.
남중, 남고에 이공계 출신으로 오로지 명문대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나는 대학에 진학하면 연애를 정말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신입생 환영회는 모두 참석해 다양한 사람들과 인사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다.(지금 생각하면 참 부질없는데 말이지..)
무튼 당시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한 새내기 여학생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가슴이 쿵쿵 뛴다는 게 어떤 건지 알려준 친구이다.(하지만 어째선지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같은 지역 출신에 나보다 한살 어렸던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 거렸고 더 가까운 관계가 되고자 3월 한달 내내 갠톡과 만남을 가지며 그 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 나름의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성 친구 자체가 단 한 명도 없었던 내게 고백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백을 할 방도가 생각이 나질 않아 혼자서 소주만 2명을 마시고 만 나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두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취중진담 고백을 시전했다.
아무런 썸도 타지 않고 했던 고백이 제대로 먹혀들어갈 리 없었다. 상대는 다음날 나를 불러 만일 진심이라면 우린 두번 다시 못볼 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 말이 너무 두렵게 느껴졌고 술김에 한 헛소리라며 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멍청한 짓을 했다.(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난 좋아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그냥 다시 안보면 될 일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 친구와 친구로서의 관계를 가지고 있던 중 뜬금없이 다른 동기가 내게 신입생 환영회 이후로 그 친구와 사귀고 있다는 걸 내게 고백했다.(시발?) 이게 굉장히 내게 충격적이었는데 왜냐면 이 남자 동기와 나, 그리고 그 여자애 셋이서 보드카페부터 술집까지 거의 찰떡같이 붙어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고백한 시점에 둘은 이미 사귀고 있었다.
그 동기 둘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그 순간 꽁냥꽁냥하던 둘 사이에서 멍청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히히덕거리는 병신처럼 느껴졌고 처음으로 느꼈던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만큼, 아니 그 이상의 멘붕이 찾아왔다. 이와 관련해 홍대 ho bar 에서 학교 선배들과 이야기하던 중 한 친구가 내게 담배 한 대를 건냈고 그렇게 담배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02. 우울하니까, 버텨야하니까, 그렇게 해비 스모커의 길로..
사실 담배를 접할 초기에는 일종의 캐주얼 스모커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피지 않은 날도 많았고 담배로 인한 후유증 또한 없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게된 건 2011년 11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실 당시였다. 생존 가능성을 숫자로 말하고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보며 엄청난 충격과 슬픔으로 가득차게된 나는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떠오를 리 없었고 줄담배를 피며 내가 가진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루 한갑 가까이 피는 흡연자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로 담배를 끊은 적도 있었다. 나와 사귀던 친구가 내가 흡연하는 걸 원하지 않아 대략 6개월 간 담배와 이별을 했었다. 하지만 사귀던 친구와 사이가 안좋아지자 담배를 다시 피게 되었고, 헤어진 이후에는 이전보다 더 많이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전역 후에는 취업 준비라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취업 후에는 수습 기간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수습 통과 이후에는 실적 압박을 버티기 위해서라는, 나만의 핑계를 계속해 만들어나갔다. 특히, 회사 생활을 하며 담배를 연달아 2~3 개피를 피우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어느순간부터 누구나 인정할 법한 해비 스모커의 길을 걷고 있었다.
03. 건강, 돈, 가족을 위해서? 다 맞는 말인데 그걸로는 안 된다.
필자는 현재 금연 3주차(글을 적는 지금 마지막 담배를 피운지 21일 하고 14시간 가량이 지났다.) 금연을 하며 느낀 건 금연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야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연 의지를 다지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특히 보건소 사람들이 말하는 금연해야 하는 이유들은 금연에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무슨 말일까? 먼저 금연을 권유하는 이들의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는 아래 3가지로 귀결된다.
- 건강
- 돈
- 가족(혹은 여자 친구)
단연컨데 위 3가지로 흡연자를 백날 설득시키려 해봐야 다시 흡연자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구체적으로 왜 이 3가지가 금연 의지에 도움이 안되는지 설명해보자.
먼저 건강이다. 어릴적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는 둥 마는둥 하곤 한다. 이는 금연에도 마찬가지이다. 흡연자에게 건강을 생각하라는 말은 학생들에게 공부하라는 말과 같다. 하도 들어서 알긴 아는데 듣기 싫으니 그냥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 생각하라는 말은 그다지 금연 의지를 북돋아주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돈이다. 흔히 흡연을 안한다면 돈 절약이 많이 된다고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흡연으로 해소했던 스트레스를 다른 걸로 해소하다보면 돈은 더 들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식욕이 있다. 금연을 하게 되면 식욕이 많이 오르고 입이 심심한 걸 해결하기 위해 아몬드, 껌 등을 먹게 되는데 이 비용이 결코 담배 한 갑보다 저렴하지 않다.(편의점에서 가나 초콜릿 2개와 아몬드 하나 사면 4,500 원보다 비싸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식욕보다 물욕이 크게 올랐는데, 최근 3주간 쇼핑으로 50만원 가량을 소비했다.(...) 이처럼 돈 절약을 강조한다면 막상 돈 절약이 되지 않아 오히려 담배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가족(혹은 여자 친구)이다. 사실 이 요소는 금연에 상당히 도움을 주긴 하며 필자 또한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요소로 가져가야지 절대 금연의 핵심 사유로 가져가면 안된다. 왜냐면 가족과 다투거나, 여자 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지 담배가 내민 손을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위에서도 적었듯이 필자 또한 여자 친구를 위해 담배를 끊었지만 사이가 안좋아지자 더 피웠던 이력이 있다.
04. 내가 나를 통제하는 기쁨, 성공적인 금연의 시작
그렇다면 필자의 금연 노하우는 무엇일까?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바로 금연하는 내 모습을 멋지다고 스스로(진정성있게, 진심으로!!) 느끼는 것이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생각보다 흡연할 때 자신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부숴버릴 계기를 찾아야 한다.
나같은 경우 담배에 모든 내 일상이 컨트롤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때가 흡연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하던 이전 사고 방식을 산산조각 내뜨린 계기였다. 여자 친구를 만나다가도, 회사에서 업무를 보다가도 담배를 피지 않으면 극도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머릿 속에 담배 생각으로 가득차는 모습은 파블로프의 개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또한, 우울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 담배를 피지 않으면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이 과정에서 '다시 펴도 절대 슬프거나, 스트레스 받거나, 우울할 때만큼은 담배를 피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게 굉장히 강력하게 작용했는데, 내가 담배를 피우며 했던 핑계들이 항상 '우울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우울하기 때문에' 였기 때문이다. 이 맹세는 실제 금연 초창기에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금연 4일차 당시 금단 증상으로 우울증이 찾아왔고 이를 해소하고자 담배를 구매했다. 하지만 내 의지를 놓고 싶지 않아 담배를 피지는 못하고 불만 붙이고 냄새를 맡았는데(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다,,)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담배가 더 싫어진 에피소드가 생겨버렸다.
05. 금연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사실 나는 현재 금연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이런 글을 적어도 될 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금연 방식이 괜찮은 방식이라고 판단했고 지속 가능성 또한 높게 느껴져 글을 적게 되었다.(실제 필자는 금연 보조제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잘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담배 냄새를 맡으면 너무 머리가 아프다.)
만일 금연을 시도하고 싶다면 단순히 끊어야 하는데라는 의미 없는 넋두리 대신 담배 피는 내 모습이 정말로 형편 없다는 걸 느끼길 바란다. 그리고 담배를 참는 내 모습이 즐겁고 멋지다는 생각을 하며 나만의 중2병 라이프를 즐겼으면 한다.
다음에는 금연 초반 일주일간 내가 경험한 금단 증상에 대해 더 구체적인 스토리를 적어보려 한다. 지금 담배를 피며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금연을 시도해보길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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